안녕하세요. 아웃폭스 입니다.
오늘은 중국의 대표 기업인 중 한 명인 '마윈' 형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의 일화는 너무 많아서 한 번에 다 풀어내기는 힘들 것 같고, 이번 글에서는 전체적인 그의 일대기 형식으로 써내려가볼까 한다.
학창시절의 마윈
1964년 9월 10일, 저장성 항주시에서 출생한 마윈은 할아버지가 국민당의 보장 출신 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공산당의 반대파)
아버지는 당시 저장성 희극협회 제 4, 5회 주석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부시장 급이었다고 보시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 입니다.)
12세의 마윈은 처음 생긴 라디오로 영어를 접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외국인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자전거로 45분 거리에 있는 항저우 호텔을 매일같이 오갔다는 억척스러운 일화가 있습니다. 이후 13세 때에는 외국에서 온 친구들에게 여행 가이드를 도맡아 해주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자존심도 강하고 지기 싫어했던 성격 탓에 친구들과 잦은 싸움이 있었고 이 때문에 전학을 간 일화도 있다고 합니다.
청년시절의 마윈
마윈의 위대한 도전..
떡잎부터 남 달랐던 마윈은(그의 의지력과 부모님의 배경 역시 남 다르긴 하죠) 평범하지 않은 청년기를 보내게 됩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청년기는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을 진학하여 취직 후 열심히 회사를 다니는 것이겠죠..)
1982년 첫 대학 수능시험에서 수학 1점을 맞으며 낙방했다고 합니다. 대학시험에 떨어진 후, 사촌동생과 호텔에 취직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갔으나 외모 때문에 사촌동생만 합격하고 마윈은 호텔 취업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1983년 대학시험에 재도전을 해보지만 또 다시 낙방하고 맙니다.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기술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권유에도 그는 대학을 포기하지 않기로 합니다.
1984년 삼수 도전끝에 드디어 그는 항주사범대학을 입학하게 됩니다. 마윈의 시작은 어렵고 초라했지만 학교를 졸업할 때는 항저우시 대학생 연맹 회장직을 맡을 만큼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1988년 대학을 졸업한 마윈은 항저우전자과기대학교에서 영어와 국제무역 강사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합니다.
1992년 영어강사로 유명세를 탄 마윈에게 많은 사람들이 영문 번역을 의뢰하게 되자, 마윈은 번역회사를 차려서 운영하기 시작했고, '이우'와 '광저우'에서 무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우/광저우는 도시 이름임)
1994년 미국 시애틀 출신의 영어강사 Bill 을 통해서 인터넷이라는 것을 알고 접하게 된 마윈은 인터넷과 관련된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합니다.
1995년 강사직과 출판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모았던 돈과 여동생에게 빌린 돈을 합해, 2만 위안(한화 약 3백만원)으로 창업을 준비합니다. (참고로 당시 위안화 2만 위안은 상해에 집을 2채나 살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의 돈 이었습니다.) 마윈은 아내 장잉(张瑛), 그리고 친구 허이빙(何一兵)과 함께 중국 최초의 상업용 인테넷 사이트인 "杭州海博电脑服务有限公司"를 설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Chinese Yellow Pages 사이트를 오픈하기에 이릅니다. (당시 중국에는 인터넷이라는 것 조차 없었다고 하고, 사이트 오픈 뒤 3개월 후 인터넷 선이 개통 되었다고 합니다.)
1996년 항저우전신(杭州电信) 이라는 기업에서도 인터넷 사이트를 오픈하였고 인터넷 시장은 분할되기 시작했으나 마윈은 곧 마윈:항저우전신(3:7) 의 비율로 합병을 추진하게 됩니다.
1997년 중국 외교부에서도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하자 마윈은 회사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게 됩니다.
1999년 18명의 직원과 50만 위안(한화 약 8천 만원)으로 지금의 '알리바바'의 전신인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해외 투자은행으로부터 총 2,500만 달러(한화 약 28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하게 됩니다.
2003년 C2C 쇼핑몰인 '타오바오' 사이트를 개설하면서 기존 온라인몰의 강자 eBay 에 정식으로 도전장을 던지게 됩니다. 당시 모든 판매상들의 인터넷 점포개설 비용을 무료로 해줬던 탓에 '타오바오' 몰은 급성장을 하게 됩니다.
2004년 온라인 결제시스템은 즈푸바오(支付宝)를 설립하면서 안심 온라인 결제시스템까지 갖춘 쇼핑몰로 사업을 확장하게 되었고 다시 한 번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판매자-구매자간에 안전한 결제 문제가 골칫거리 였습니다.)
2005년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렸던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바로... 야후가 알리바바에 10억 달러(한화 약 1.1조원)을 투자하여 지분 40%와 35%의 의결권을 인수하게 됩니다. 이후 마윈은 중국 야후의 회장직을 맡게 됩니다.
2007년 마윈이 설립한 알리바바 네트웍시를 홍콩증시에 상장하는데 성공합니다.
2008년 모교인 항저우사범대학과 합작하여 '알리바바 비즈니스 학과'를 설립하게 되고, 마윈은 초대 회장직을 맡게 됩니다.
성공궤도에 오른 마윈..
엄청난 리더십과 뛰어난 사업기질을 발휘하며 청년기를 불태웠던 마윈.. 이제 성동궤도에 오르게 되었지요..
하지만 2013년 우리에게는 큰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마윈의 공식적인 'CEO 퇴임선언' 이었지요. 아직은 젊은 나이었고 지속적은 기업의 성장을 이끌고 있었던 시기 였기에 그의 은퇴를 바라보는 의문과 다양한 시각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윈은 퇴임식에서 "자신의 끝은 새로운 알리바바를 만들어 가는 시작의 날이다" 라며 덤덤한 자세를 유지하였고, "세상은 이렇게 넓고, 기회가 저렇게도 많으며, 나는 아직도 열정이 넘치는데 어찌 이 젊은 나이에 사회에서의 은퇴를 할 수 있겠는가.." 라며 다른 일들을 하겠다는 언지를 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마윈은 알리바바 CEO 직을 퇴임한 후에도 알리바바와 합작을 하거나 인수하는 새로운 기업들의 회장직을 맡으며, 새로운 비즈니스의 선구자로서 활약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윈에게는 정말로 역사적인 순간이 찾아오게 됩니다.
2014년 알리바바그룹이 뉴욕 증권시장에서 정식으로 상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6년에 마윈은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제 2의 부자'로 선정 되었고, 당시 그의 자산은 약 282억 달러(한화 약 30조원)에 달했습니다. 1995년도에 약 3백만원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던 마윈이 약 20년 만에 이루어 낸 성과입니다. 참... 대단하네요...
그의 자산은 꾸준히 늘어가고 있고 국제사회에서도 많은 활보를 하며,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들을 모여주고 있습니다.
한 회사의 영원한 주인은 없다. 마윈도 이제 곧 알리바바의 경영참여에서 발을 뗄 예정이고, 계속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항상 즐거움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끊임없는 열정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그의 삶에 박수를 보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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